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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했어 토닥토닥

wawab 2021. 10. 28. 21:55

오늘은 아이 접종일이다.
한동안 접종이 없었는데 생일이 지나고 오라고 해서 저번주부터 주사를 맞으러 일주일 간격으로 나오고 있다.
애비 없이 하룻동안 병원 스케줄을 소화해야 되다보니 몇일 전부터 긴장이 됐다.
차는 남편 차로 바꿔 타고 갔다(내 차에 아기 카시트가 고장났다) . 내 차는 경차인데 남편 차는 SUV라 운전과 주차하기에 좀 부담스럽다. 그 와중에 주차 공간이 양쪽으로 SUV가 나란히 서 있는 가운데 칸 밖에 없었고 그 차들은 선만 안 물었다뿐이지 상당히 바싹 대어 놓아서 절로 한숨이 났다. 다른 곳에 주차해 보려고 둘러봐도 똑같이 SUV사이에 빈 공간… 어째 이럴수가 다 있노…
하는 수 없이 주차는 했는데 나 혼자 내리기도 버겁다. 애비가 있으면 둘 중 하나는 아이와 먼저 내린 뒤 주차하면 되는데 이건 영락없이 낀 채로 아이를 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를 반대쪽으로 가까스로 내리고 아기띠에 메고 차로 내려왔던 주차장 내리막을 걸어올라갔다. 코로나 때문에 입장 가능한 입구가 제한되다 보니 멀쩡한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두고 주차장 터널을 걸어야 했다.
어플로 예약을 해 둔게 취소 되서 병원 도착하기 직전에 다시 예약을 했다. 요즘 파라바이러스인가 뭔가로 병원에 사람이 너무너무 많다. 지난 주에 기다리느라 고생도 하고 늘 보던 선생님에게 진료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주는 어플로 예약을 해 둔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많다. 그래도 어플 덕에 대기인수는 기다릴 만한 정도였다.
진료를 보다가 며칠전에 아이 몸에 알러지가 올라온 것이 걱정되어 사진을 보여드렸다. 유제품에 알러지 반응이 있지만 나아지기도 한다기에 우유 먹기를 시도하던 중이었다. 아이가 우유팩을 쥐어 짜버리는 바람에 온몸에 튀었고 금세 두드러기 같은게 우수수 올라왔다.

우유팩을 손으로 짜버린 딸…그리고 발진…ㅠㅠ

의사 선생님도 아이가 유제품에 반응을 보이는 건 알고 계셨지만 사진을 보고서는 이건 너무 심하다며 알러지 검사를 하는게 좋겠다고 하셨다.

역경의 본방은 이제부터였다.
간호사이모한테 애교 부리며 잘 안겨 있던 아이는 채혈을 하러 들어간 순간….
병원이 떠나가라 울부짖고 고통에 몸부림 쳤다. 그런 아이를 나는 온몸으로 꼭 안고 있어야 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발버둥 치다 신발이 다 벗겨질 지경이었다. 그러다보니 혈관 찾기도 어려워서 시간이 걸리자 아이는 더 울부짖고… 애미 마음은 찢어지고 그랬다. 울다 목이 쉬는 게 아닐까 걱정될 즈음에 채혈이 끝났다.
밖에 나와서 진정시키느라 간식을 주니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하지만 접종 두 대가 더 남았다.
한 대 맞고 울고 두 대째에 더 울고… 오늘따라 고생을 너무 시키는 것 같아 애미 마음은 계속 저며오고… 오늘따라 애비의 빈 자리는 크고… 병원 밖을 나서는데 나도 얼마나 용을 썼는지 반팔티 앞뒤판이 땀에 젖어 있었다.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그 길로 전에 일했던 회사에 돌 답례품을 들고 인사를 하러 갔다. 아이는 잠깐 눈을 붙이고는 기분이 나아졌는지 이모 삼촌들 앞에서 아장아장 잘도 걷고 엉덩이 춤도 췄다.

그거 엄마가 선물 받은 건데…집에 가는 순간까지 제것마냥 안놔줬다

옆에 붙어 앉아 밥알도 날름날름 받아 먹고 잔 멸치도 납죽납죽, 귤도 까주는 족족 받아 먹는다. 잘 먹으면 괜찮은 거다.
우리집 쫄보는 집에서는 온 집안을 휘젓고 걸어다니는데 밖에만 나오면 얼음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는 걷네? 많이 편해졌나보다. 이모들한테 사랑 잔~뜩 받고 아까 아프던 것까지 싹 잊었나보다.
회사에서 나와 평거동까지 나온 김에 얼마전 수희언니가 사다 준 밀키트가 생각나서 그걸 사러 또 들렀다. 차 댈데가 없어 길가에 세워두고 서둘러 아이를 안고 가게에 들렀다. 사장님이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선뜻 아이를 안아서 봐 주셨다. (사장님 너무 친절해요. 제품도 너무 좋아요. 평거동 미미쿡이예요. 깨알홍보)
살 것까지 다 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고단했던지 차에서 고개를 저어가며 존다. 집에서 내려놔도 잔다.

집이 더워 쫄바지를 벗겨줬는데 너무 주정뱅이가 됐다

나도 그제야 한숨을 돌리고 앉는데 아득해지는 정신… 붙잡아야지 붙잡아야 돼…
하아.. 이 모든 일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일…
하루가 길다.
주사를 맞혀 목욕도 못 시키니 시간이 더 안가고 더 길다. 잠깐 눈 붙이고는 더 자지 않는 아이 덕에 증말이지 하루가 더 길다. 나는 오늘 초단위로 산 것 같다.
아가야, 너도 나도 고생 참 많았다.

아…내일은 내가 백신 2차 맞는 날.
그런데 애비가 또 없다… 아이를 안고 또 혼자 병원에 가야한다. 내일 하루도 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