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이 넘게 가렵다. 등과 목뒤, 가슴 언저리에 무언가가 오돌토돌 나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려웠다. 가장 심한 등허리 부분은 벌겋게 변색이 일어났다.
사실 몇년 전부터 건조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을 때면 항상 나타나던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전에 처방 받은 연고나 아이의 아토피 로션을 바르면 완화될 거라 생각했다.
나는 좀 미련한데다 병원을 좋아하지 않고 이런 가려움증 같은 건 크게 여기지 않았는데 남편이 가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나는 거의 한 달? 아니 좀 더 오랜만에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혼자 나가게 되었다. 한 달쯤 전에 나갔을 때도 병원에 가는 거였는데 이번에도 역시 병원에 가는 걸로 나오다니...
병원에 가는 걸 가지고 나들이라고 하긴 뭣 하지만 바깥 공기를 쐬는게 중요하니까.
오랜만에 나가면 제일 걱정되는 것이 운전이다. 하도 오랜만에 운전을 하니까 이거 다 까먹은거 아니야? 이 교통 정글에서 살아 돌아 올 수 있을까?-가 걱정인 것이다. 그러나 웬걸, 운전대를 잡자마자 나는 다시 경차라 무시 당하지 않으려 다져진 양아치 기질이 고개를 들고... 그렇게 잘 다녀왔다는.... ㅋㅋㅋ
어쨌든 익숙하게 핸들을 휙휙 꺾으며 LH 본사 내에 있는 피부과에 갔다.
그동안 여러 방역 환경을 보았지만 역시 공사는 다른 것인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다니니까 신경을 쓰겠지만 열 체크 담당자 1명, 보안 1명에, 서 있으면 바람으로 제균을 하는 시스템이 주요 입구마다 설치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너무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그새 세상이 진화라도 한 줄 알았다. 나만 빼고.
물어 물어서 병원에 들어가니 휑.... 하다. 평일이라 그런건지 코로나 때문인지 아무도 없네. 접수처에 등록하고 기다렸다. 아무도 없으니 대기실 의자에 엉덩이 닿자마자 불려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과 제법 떨어진 위치에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의자 밑에는 거리를 두기 선이 그어져 있고. 아... 거리감 느껴지네...처음보는 의사 선생님과 당장 친밀할 필요는 없지만 괜히 섭섭하다.
이 건물에 들어서니 집에선 체감 못했던 코로나가 격하게 와 닿네.
이래저래 문진을 하고 그어놓은 선이 무색하게 나는 환부를 보여주고 선생님은 들여다 보려고 간호사까지 불러와서 같이 들여다 본다. 그런데 선생님이 대뜸 대상포진 이야기를 하시는게 아닌가. 엥? 대상포진이라굽쇼?
아마도 변색이 된 등허리 환부와 약간의 통증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전에 같은 증상으로 알레르기성 접촉염 진단 받은 적이 있고 모유수유를 하기 때문에 약 쓰는 걸 가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 지금 할 수 있는 건 대증치료 밖에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대증치료로 완화가 되지 않으면 알레르기성이든 뭐든 습진 종류인데 그에 관한 약을 쓰든 대상 포진 약을 쓰게 되든 그 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수유를 중단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엥?... 중단이라굽쇼...? 그냥 가려워서 왔는데 이만저만 충격이 아니다.
약을 써 보고도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대상포진이라면 몇일 사이에 양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그렇게 충격으로 얼떨떨해진 상태로 수납을 하러 갔는데 대상포진에 관한 아크릴 패널이 놓여 있다. 마치 대상포진 주의 기간이라도 되는 것인 양. 그걸 보자 드는 생각은 ‘의사 쌤, 너무 꽂혀 계신거 아닙니꽈?’
약을 타고 건물 뒷편 주차장으로 가는데 괜시리 더 스산하고 바람도 더 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인가...
다음 수유텀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3시간 안에 들어 가면 된다. 아쉽다. 어딜갈까...
전에 남편 사촌 동생이 사촌언니가 하는 곳이라며 다쿠아즈를 파는 카페 게시물을 올린 적이 있다.(촌수 복잡...) 그 다쿠아즈가 그 때부터 쭉 먹고 싶었는데 남편은 자꾸 까먹으니 내가 사 와야겠다 싶었고 다행히 집에 가는 방향에 있었다. 아파트 내 상가에 있었는데 나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안되는 줄 알고 길가에 차를 세워 두고 걸어 갔다. 찬바람 쌩쌩 맞는 주제에 오랜만에 운동하는 거라는 정신승리 해가며.
막상 가보니 코웃음이 쳐질 정도로 허무한 위치에 카페가 있었고 상가 방문객 전용 주차장까지 있네? ㅋㅋㅋ
튼, 나는 주문하려고 계산대에 섰고, 속으로 ‘아, 이분이 남편 사촌동생의 사촌 언니란 말이지?(씨익)’하며 남편이 마실 카페모카와 내가 마실 콜드브루, 다쿠아즈 2개를 샀다. 다쿠아즈가 이렇게 비싼 거였다니...그래서 4개 사려던 걸 2개밖에 못 사면서 이정도는 사 먹어야지 하면서 다시 정신 승리.
집에 와서 다쿠아즈 가격에 남편과 함께 놀라워 하며 맛에 다시 놀라며 맛나게 먹었다.
이 모든 일은 오전 11시 반에서 오후 1시 반이 넘는 2시간 남짓한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그 잠시 간에도 제법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왔다. 그리고 아이가 있으면서도 없는 묘한 상태도 경험했다. 코로나만 좀 잠잠해진다면 남편 찬스로 종종 나가봐도 되겠는걸? 그러려면 젖병을 거부하는 딸래미... 다시 적응을 시켜야 할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