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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일기-2022/02/07

wawab 2022. 2. 8. 23:32
안방같은 병원 대기석

눈 오기 전처럼 스산하다.
실내온도는 내내 25도를 넘지 못하다가 좀 이르게 켠 보일러 덕에 6시가 넘어서야 25도를 넘겼다. 해가 들지 않는 날은 집도 밖도 춥다.

옆 자리 할머니 폰으로 보는 고양이


추운 날인데 정작 추위를 제대로(?) 느끼지는 못한 것 같다.
오전 동안은 연우 반찬 만들기, 청소, 설거지로 정신 없이 보냈고, 오후에는 피부과에 가서 엄마라서 겪는 체력장을 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병원에 사람이 좀 없겠거니 했는데….(이 시국에 문전성시라 할 만큼) 좌석마다 한 자리 건너 한 사람씩 죄 앉았을 정도였다.
차에서 내려 신이 난 연우는 그렇게 많은 어른 사람을 본 건 처음이라 그런지 ‘얼음’ 상태가 되었다. 새로운 공간이라면 곧장 달려나가 탐색하고 보는 아이가 내 다리에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웬일인가 싶어 안아다 무릎 위에 앉혀 두어도 제법 순순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다시 내려 두어도 내 다리에 붙어 있던 연우의 봉인을 해제시킨 것은 옆자리 할아버지의 트롯트 벨소리였다. 벨이 울리자, 무심하고도 시크한 표정으로 눈은 초점도 없이 소파를 짚고 섰던 다리가 까딱거리기 시작했다. 오금을 채여 실수로 무릎이 꺽인듯 가장하는 모습이었지만 분명히 박을 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기가 막혀 웃고 있었고 곧,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상황의 전초임을 간과했음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다.
박자타기로 가볍게 몸을 푼 녀석은 온 병원로비를 휘젖고 다니기 시작했다. 자동문을 양손으로 잡고 강제로 열려는 것을 뜯어 말렸더니 밖으로 튀어 나가서는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보물찾기를 하고(쓰레기를 볼 때마다 반갑게 웃으면서 달려가기 때문이므로) 그러다 다시 발을 바지런히 굴려 로비로 들어 가서는 앉아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들을 다 흝고 지나간다.
이쪽 이모한테 가서 휴대폰 덮치려는걸 잡아다 떼어놓으면 저쪽 삼촌 다리 위에 당연스레 고 솜뱅맹이 같은 손을 올려 놓고 애교를 부리다 서울구경 한 번 하고. 예쁜 이모야 휴대폰 또 덮치나 잡으러 갔더니 이모의 핫핑크 젤네일에 붙은 리본모양 파츠를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고….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나마 인적이 좀 드문 대기석에 앉혔더니 옆자리 할머니랑 할머니 폰으로 고양이를 같이 보고 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지치지도 않고 병원을 접수 했고 나는 한 시간 반을 ‘죄송합니다’를 했으며 이 아이는 병원 인싸가 되었다.
겨우 진료를 보고 약국에 약을 타러 갔더니 병원에서 만났던 그 이모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어 오신다.
연우 덕에 약국은 만남의 장이 되었고 연우는 다시금 인싸력을 발휘하였으며 할머님이 봐주시는 동안 연우애미는 계산을 잘 마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차에 타자마자 연우는 간식으로 준 두유를 쥔 채 잠이 들었고 애미는 약국 앞에서 산 잉어빵 두 마리를 순삭했으나 여전히 당이 딸렸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