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이돌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
너무 덥던지 아니면 비가 오던지 해서 그동안 산책을 제대로 못했다.
오늘따라 낮잠을 일찍 자고 깨버린 딸을 오도카니 앉혀 놓고 뭐할까 생각하다 산책하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딸도 산책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모자나 마스크를 하거나 아기띠를 메면 눈빛이 반짝반짝하고 흥분하는 낌새가 있다.

아니나다를까 간만의 바깥구경이라 그런지 나가자마자 다리를 파닥대며 신이 났다.
집안에서 바깥 기온이 많이 떨어진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에 깜짝 놀랐다.
정말 살맛나는 온도랄까! 열 많은 아가야도 시원한걸 아나보다.
시원한 날씨에 기세등등하게 마을회관을 지나 정자나무를 지나 영천강 둑길을 올랐다 내려와서는, 갔던 길을 되돌아가 마을회관 입구를 지나쳐 배집 아주머니네 집을 지나고 큰 개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네 집을 지나 벽돌집을 지나 마을 안으로 휘 돌아 나와 우리집 앞에 섰다.
아까 지나다 보니 마을 회관문 창으로 어르신 한 분이 스치는게 보였는데 계시면 인사나 할겸 다시 마을 회관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회관 안쪽에서 어르신이 딸에게 까꿍을 하고 계신다. 인사를 하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분이 더 계셨다.
아기를 보기 힘든 마을이다 보니 이장 사모님이 아기 좀 내려보라고 하셔서 마루 위로 올라 갔다.
딸은 처음 보는 장소에 아직 낯이 익지 않은 할머님들을 보고는 어리둥절해 했다. 많이 낯 가리는 아이는 아닌지라 30분 정도 앉아 노는 동안 할머니들에게 애교도 부리고 재주도 보이고 하면서 박수도 받고 웃음도 많이 받았다.

요 쪼꼬만 녀석도 제 예쁘다하는 사람을 아는지 애교를 부리는 게 참 기가 찬다. 덕분에 10개월짜리 아이돌이 됐다. 어르신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한참 잘 데리고 놀아주셨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보았을 장면일텐데 싶었다.
시골 마을에 사니 이런 정겨움을 다 만나보는 구나. 이런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 사람 사는 거구나 싶었다.
다음 회동을 노리며 아이돌 개인기 좀 마련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