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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이돌

wawab 2021. 9. 5. 22:15

날이 많이 선선해졌다.
너무 덥던지 아니면 비가 오던지 해서 그동안 산책을 제대로 못했다.
오늘따라 낮잠을 일찍 자고 깨버린 딸을 오도카니 앉혀 놓고 뭐할까 생각하다 산책하러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딸도 산책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모자나 마스크를 하거나 아기띠를 메면 눈빛이 반짝반짝하고 흥분하는 낌새가 있다.

나를 보지 말고 딸을 봐주세요 내 몰골이 말이 아니거등여

아니나다를까 간만의 바깥구경이라 그런지 나가자마자 다리를 파닥대며 신이 났다.
집안에서 바깥 기온이 많이 떨어진걸 느끼고는 있었지만 현관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시원한 공기에 깜짝 놀랐다.
정말 살맛나는 온도랄까! 열 많은 아가야도 시원한걸 아나보다.
시원한 날씨에 기세등등하게 마을회관을 지나 정자나무를 지나 영천강 둑길을 올랐다 내려와서는, 갔던 길을 되돌아가 마을회관 입구를 지나쳐 배집 아주머니네 집을 지나고 큰 개들을 키우는 젊은 부부네 집을 지나 벽돌집을 지나 마을 안으로 휘 돌아 나와 우리집 앞에 섰다.
아까 지나다 보니 마을 회관문 창으로 어르신 한 분이 스치는게 보였는데 계시면 인사나 할겸 다시 마을 회관으로 내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회관 안쪽에서 어르신이 딸에게 까꿍을 하고 계신다. 인사를 하러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분이 더 계셨다.
아기를 보기 힘든 마을이다 보니 이장 사모님이 아기 좀 내려보라고 하셔서 마루 위로 올라 갔다.
딸은 처음 보는 장소에 아직 낯이 익지 않은 할머님들을 보고는 어리둥절해 했다. 많이 낯 가리는 아이는 아닌지라 30분 정도 앉아 노는 동안 할머니들에게 애교도 부리고 재주도 보이고 하면서 박수도 받고 웃음도 많이 받았다.

이번에도 나를 보지 말고…

요 쪼꼬만 녀석도 제 예쁘다하는 사람을 아는지 애교를 부리는 게 참 기가 찬다. 덕분에 10개월짜리 아이돌이 됐다. 어르신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한참 잘 데리고 놀아주셨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보았을 장면일텐데 싶었다.
시골 마을에 사니 이런 정겨움을 다 만나보는 구나. 이런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참 사람 사는 거구나 싶었다.
다음 회동을 노리며 아이돌 개인기 좀 마련해 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