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연

1) 총평
이 책을 받고 앞, 뒤로 뒤집어 보며 추천사 같은 것이 있나 살펴 보았다. 추천사가 있는 책들은 혹하게 되기는 하나 알맹이를 까보았을 때, 별 내용이 없은 경우도 많아서 최대한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이 작가를 SNS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선물받은 아이패드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던 차에 이 작가가 책을 낸다고 하지 않은가. 평소 그림에 관심은 있으나 선뜻 그리지는 못하고 재료만 쌓아놓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라니. 제목부터 내 속에 들어갔다 나온것만 같다.
책을 받고 스윽 넘겨보니 웬걸? 그림 그리는 법이라는데 참고가 되는 그림이라던지 기법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너무 없다. 기대가 무너지는 소리에 갸우뚱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목차부터 되는대로 넘겨봤다. 응? 또 웬걸? 읽다보니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며? 무슨 글이 이렇게 흡입력이 있담? 넘기다 넘기다 읽을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까운 지경이 됐다.
겁내지 않고 그리는 법이 맞았다. 겁내지 않고 그리는 ‘태도’에 대한 방법론적인 책이었던 것이다.

마음이 열리자 표지부터 다시 보게 된다. 감청색의 표지 색은 단연 내 눈길을 끄는데 내가 이 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디자인 없이 컬러가 주는 스타일리시함과 표지의 질감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이 한 몫했다. (책 뿐만 아니라 우리는 껍데기에 많이 좌우되는 인간이 아니던가. )그리고 실버 컬러로 낙서를 휘갈겨 놓은 듯한 선이 인쇄되어 있다. 마치 겁내지 않고 그리기 위해선, 연필 두께라도 확인하듯 이렇게 휘갈기는 것에서부터라고 심플하게 드러내 주는 것 같다. 아, 표지부터 상당히 영리하게 느껴진다.
책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 B5정도의 크기인데, 공교롭게도 이 사이즈도 내가 가장 선호하는 사이즈다. 휴대하기 좋고 한 손에 들기도 좋다. 책의 하드웨어에서 이미 반하고 말았다.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나는 평소에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끄적여 왔던 것도 있고 좀 더 잘 그리고 싶어서 원데이 드로잉 클래스를 들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늘 처음의 열정만큼 진득하게 그려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림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방면에서도 그래왔다.
처음부터 잘하기를 바라고 계속 잘하기를 바랬다. 게다가 잘 못 그은 선도 과정일텐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놀란 것은, 바로 나의 이 찌질함을 관통해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간의 책들은 그림을 그리는 책이면 그 방법을 이야기하고, 자기계발서라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왜 시작에 두려움을 갖는지 겪어 온 자만이 알 수 있는 언어로 짚어준다. 그리고 나보다도 어린 작가가 어쩌면 이렇게 단단하게 말 할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놀라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는 ‘삶을 대하는 태도’로 치환하여 읽을 수 있다. 작가도 이야기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나 인생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이 작은 책에서 이것만 깨달아도 나로선 엄청 큰 수확이었다. 그러나 이것하나만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구절절히 툭툭 박히는 것이 읽고 나니 책은 플래그 스티커로 단을 이루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게 글 쓰는 재주가 있다면 감히 추천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나간 일기를 들추어 보듯이 그렇게 지난 일을 복기하듯 간간히 다시 들춰볼 책이 하나 늘었다.
2) 기억에 남는 것

열등감을 대하는 자세와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가 인상 깊게 남는다.
열등감을 대하는 자세에는 ‘창작자가 가져야 할 비위’라는 소제목이 있다. 제목을 보고는 비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인 즉슨, “가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과 영감이 아니라 감정을 견딜만한 비위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운을 떼며 전갈, 곤충,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로 에너지원을 얻는 오지 탐험가 베어 그릴스 이야기를 한다.
나라는 인간은 열등감 덩어리다. 내가 가진 배경과 재능없음에 대해 항상 옹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열등감에서 비롯된 그 끈끈하고 갑갑한 감정에 늘 휘둘리고 매몰되기 일쑤였다.
나는 그 감정을 열어 정체를 파악해 보려고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분해하거나 질질 짜거나 포기해 버렸다.
감정을 열어 정체를 파악하고 그 속이 웅크린 나를 ‘인정’해야 했다. 그 웅크린 나와 손을 잡고 서로의 힘이 되어 주어야 했다.
왜 나는 그 때 이런 생각의 방법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을까. 나 자신을 어떻게 연민할까, 합리화 할까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 감정을 갈라보고 제대로 음미했어야 함을 배웠다. 나는 작가의 이런 생각의 방법에 감탄해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내가 다시 열등감에 자기자신을 태워 나가고 있을 때, 내가 태우고 있는 것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연료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는 열등감의 시간이 그리 두렵지 않다.
또 한가지 인상 깊었던 곳을 짚어보자. 그리기 장에서 책의 제목과 같은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이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두려움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드디어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 해소될 것인가라는 기대를 품고 읽어 내려갔다.
물론, 그 물음은 해답을 얻었다. 그리고 그것이 어찌나 찔리던지 총평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나를 관통당한 기분이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로 ‘못나 보일까봐’였다. 손바닥만한 종이 위에 선 하나 긋는, 자신감도 필요 없을 일에 나는 너무 큰 의미를 두고 처음부터 완벽하길 바란 것이다. 그러니 금방 지쳐 떨어진다. 못난 것이나마 쌓아가야 실력이 될 진대, 그것이 보고 싶지 않아서 연습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언제나 어중간한 상태로 무엇하나 제대로 습득하지 못했다. 쌓아 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하니 자신감도 없다. 작가는 이런 나를 어디서 지켜 보기나 한 듯이 책 속에서 일갈하고 있었다. 냉정한듯 단적인 어투로 가감없이 이 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고 난 후 다독이듯 즐겁게 실패하라고 한다. 나는 즐겁게 실패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실패하면 큰일이 날 줄만 아는 두려움만 배운 셈이었다. 나는 왜 늘 두려움에 치이고 잠식당한 대서 도태되어 버릴까. 나에게 두려움이란 또 다른 두려움을 몰고 오는 기폭장치일 뿐이었다. 그러나 실패가 즐거워지면 더이상 무엇이 두려워지겠는가. 덕분에 참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작가는 이 말을 가장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본문에 있듯이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멋진 일은 대개 두려움을 동반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만큼 그 여정은 험난하다. 그럴 때는 이 사실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지금 굉장히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 “
아니나 다를까 이 구절은 정말 징하게 내 마음 속에 여운을 남겼다.
“열등감? 가져도 된다. 두려움? 그것도 가져도 된다. 그거 다 쓸모 있는 거고 멋지려고 그런 것이다.”라고 바뀌어 읽힌다. 나는 이 작은 파랑새 같은 책을 읽으며 흔히들 이겨내라고 하는 것들을 이겨내려고 버둥댈게 아니라 담담한 삶의 자세로 치환하는 방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