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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마실-5월 12일의 일기

wawab 2021. 5. 13. 00:34


오늘의 날씨: 약간 흐림
이번주는 내내 산책을 못했다. 애비가 내내 주간 근무에 날도 흐려 나가 볼 엄두를 못냈었다.
오늘은 온다던 비님도 아니 오시기에 찡찡거리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웠다.
아이를 한 팔로 안고 나머지 한 손으로 유모차를 들고 나가서 펴는 일이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이미 골이 나서 혼자 두면 우는데다 우리 집 토방은 계단으로 되어 있어 현관에서부터 태우고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아... 엄마는 힘도 세야 하는 구나.
.
내심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 아이를 자랑해야지 하며 길을 나섰다. (나는 내가 고슴도치 애미 같은 그런 애미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길 가다 아무나 붙들고 아이를 자랑하고 싶은 영락없는 찐고슴도치였던 것이다.) 마을 입구까지 나가서는 어디로 갈까 잠시 서서 고민했다. 늘 가던 곳은 적막해 보였다. 왼쪽으로 틀었다. 그때까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달래 줄 마을 어르신을 한 분도 못 만났는데 배농사 짓는 댁 담벼락 너머로 주인집 아주머니랑 눈이 마주쳤다. 거리가 좀 있어서 미소로 인사를 드렸다. 아이를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주머니는 안에 계셔서 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아주머니가 유모차를 발견한 눈치이긴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주황색 벽돌집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는 샛길로 올라가고 있었다. 웬 트럭이 뒤따라 오길래 먼저 가라고 길 한편으로 서는데 아까 그 아주머니였다. 차 안에는 같이 일하러 가시는 아주머니 세 분이 더 타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차를 갈림길에 세워 두시고는 차에서 내렸다. 아이를 보고 반가워 하시며 벌써 이렇게 컸냐고 하신다. (아주머니는 우리집 아이를 처음 보신다. 아이가 태어났다는 걸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계신 모양이었다. 아, 그 댁에 할머님만 계실 때 백일 떡을 드리러 갔었다.)
아기가 귀하니 보니 반갑다고, 코로나만 아니면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놀아주며 좋아하셨을거라고도 하셨다.
“아들이예요? 딸이예요? 아들이죠? “ ㅎㅎㅎㅎㅎ차 안에 계시던 아주머니들도 아이를 구경하며 물으신다.
“아들만한 딸이예요.ㅎㅎ”
나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
차 안에서 또 대화가 들린다. “딸이네. 딸 같이 생겼네.”
나는 이런 마을 주민분들의 반응에도 익숙하다. 빠른 태세전환...이미 많이 익숙....ㅋㅋㅋㅋ 치마라도 입혀서 데리고 나갈걸...

나름 핑크색 모자입니다만 ㅎ 인상펴라 딸

아이를 반가워 해주시고 아이 하나로 말 붙이기 힘들었던 사람들과도 쉽게 대화가 된다.
이뻐라들 해주시니 동네 마실이 좀 설레기까지 하다.
짧은 산책에 아이는 사람 구경을 하고 나는 그것을 또 흐믓하게 보고.
참말이지, 이런 시절이 내게 올거라는 생각도 못했다.